화학물질 옆에만 가도…” 환경성 질환 공포

기산협 보도자료

화학물질 옆에만 가도…” 환경성 질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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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29% “아토피 앓은 적 있다”… 천식도 11% 넘어

환경부, 강력한 규제법 마련… 오염유발자에 보상 의무화

지방대학 직원인 A(58)씨는 화학물질에 대해 공포증을 갖고 있다. 페인트가 새로 칠해진 학교 건물이나 주유소 근처에만 가도 두통이나 피부에 두드러기가 생긴다. 심지어 호흡 곤란을 느낄 때도 있다. 실내에서 프린터를 사용할 때나, 새로 지어진 건물 쪽에서 바람이 불어 올 때도 마찬가지다. 7년여를 고생하다 병원을 찾은 A씨에게 “낮은 농도의 화학물질에 노출돼도 증상이 나타나는 ‘다중 화학물질 민감증’(multiple chemical sensitivity)”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하지만 뾰족한 치료법이 없어 A씨는 여전히 불안감에 휩싸인 채 살고 있다.

흔치 않은 케이스이지만 A씨처럼 환경오염 물질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병에 걸리는 ‘환경성 질환’에 대한 걱정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미세먼지 등 공기에 포함된 오염물질로 인한 각종 호흡기·심혈관 질환과 새로 지은 아파트에 들어가 살면서 두통이나 까닭 모를 피로감을 느끼는 ‘새집 증후군’이 대표적인 유형으로 꼽힌다. 다이옥신 같은 환경호르몬(내분비계장애물질)이 원인이 되는 생식기능 장애는 물론, 잠시도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같은 병도 환경오염 물질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아토피와 천식은 이미 심각한 상태다. 지난해 단국대 권호장 교수가 전국 8∼10세 초등학생 249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아토피에 걸린 적이 있거나 앓고 있는 어린이가 세 명 가운데 한 명꼴인 726명(29.1%)이나 됐다. 천식은 조사대상의 11% 수준이었다.

이런 환경성 질환을 예방하거나 관리하기 위해 강력한 대처 방안이 마련됐다. 환경부는 11일 “지난해부터 마련해 온 환경보건법 제정안을 다음달 입법예고하고, 올해 안에는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이르면 내년부터, 늦어도 2009년부터는 시행한다는 일정을 잡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환경관리 책임이 한층 강화된다. 대기·수질 등 환경기준을 지키지 못한 지자체는 개선계획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고, 그래도 안 될 때는 정부가 이들 지자체에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을 삭감할 수 있도록 했다. 지자체가 주민들의 환경개선과 건강을 책임질 수 있도록 옥죄겠다는 의미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환경성 질환에 대한 피해 보상 부분이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판단되면, 오염유발 주체에게 치료는 물론 회복에 이르기까지 드는 비용을 부담하도록 할 방침이다. 환경부 최흥진 환경보건정책과장은 “예를 들어 새집에 입주한 뒤 아토피에 걸리는 등 새집 증후군 피해를 봤을 경우 시공사 등에게 보상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거나 시공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법령상 근거규정이 없어 피해보상은 극히 예외적으로 이뤄지는 형편이다. 이 같은 환경성 질환의 종류와 보상책임의 범위 등 구체적인 내용은 내년에 마련될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담기게 된다.

인체에 해로운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도 강화된다. 특히 장난감과 학용품 등 어린이들이 흔히 쓰는 각종 생활용품에 납·수은·카드뮴처럼 익히 알려진 중금속이나 유해 화학물질을 사용할 경우 제조·유통업체 등에 판매중지나 리콜(강제회수)을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최흥진 과장은 “어린이용 제품뿐 아니라 세정제나 방향제, 섬유유연제 같은 일상 생활용품에 대해서도 유해물질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는 쪽으로 법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4만여 종에 이르는 화학물질이 국내에서 사용·유통되고 있지만 이 가운데 얼마나 사용하면 어떤 건강위험이 나타난다는 등의 유해성이 규명된 것은 3800여 종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회 일각과 전문가들도 입법을 서둘도록 촉구하고 있다. 아주대 장재연 교수는 “세계보건기구는 지구상 질병의 24%, 사망의 23%가 환경성 질환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 데 더 이상 (국민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은 최근 ‘환경성 질환 정책토론회’를 열고 “새집 증후군 같은 환경성 질환이 주부들만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이제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뒷받침되는 국가적 관심사로 옮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이달 하순까지 법안 내용을 좀더 구체화한 뒤 다음달부터 관계부처 협의와 입법예고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부처 간 이견이 없는 건 아니다. 보건복지부 쪽은 “업무영역이 겹칠 수 있다”는 의견을, 산업자원부는 “산업계 부담이 크지 않아야 한다”는 등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최흥진 과장은 “이번 환경보건법 제정안은 지난해부터 관계부처는 물론 각계로부터 광범위하게 의견을 들어 마련한 것”이라며 “부처협의 과정에서 일부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환경오염 피해에 대한 보상규정 등 주요 뼈대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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